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은 2016년 미국 대선은 지금 우리 대선과 비슷했다. 정책 대결보다 인신공격이 오가더니, 대선 전 막판인 10월 초 트럼프의 음담패설 비디오가 폭로됐다. 2005년 트럼프가 버스 안에서 나눈 사적 대화였다. 여성의 신체 부위를 외설적으로 표현하고, ‘여자들은 스타라면 무엇이든 허용한다’는 부적절한 내용이었다.
■클린턴은 ‘2차 대선 토론’(10월 9일)에서 비디오를 토대로 맹공을 퍼부었다. “트럼프가 대통령 자격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강당에서의 토론에서 트럼프도 맞불 작전을 폈다. “나는 음담패설만 했다. 그러나 클린턴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여성에게 더 심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걸 거론하며 “집권하면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하겠다”며 정치 보복 암시 발언도 내놨다.
■수준 이하 토론에 시청자들이 지쳐가던 순간, 마지막 질문자 칼 베커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단 한 가지라도 상대 후보를 칭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질문 덕분에 유권자들은 두 후보가 서로를 칭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클린턴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능하고 헌신적인 트럼프의 자녀들”을 칭찬했고, 트럼프는 “(주어진 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클린턴의 투사 기질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클린턴도 트럼프도 아닌, 중소기업 영업부장이자 평범한 시민인 베커가 이날의 최고 승자”라고 평가했다.
■대선 경쟁에서 말초적 비방으로 진영 간 감정의 골이 쌓이고 있다. 누가 이기더라도,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패자의 깔끔한 승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국민통합에 대한 유권자들의 염려를 덜기 위해서라도 주요 대선 캠프가 ‘칼 베커’의 추억을 되살리는 건 어떨까. 2일 밤 선거 운동을 마무리하며 상대 후보의 분투에 경의를 표하는 메시지를 내놓는 건 어떨까. “당신의 ‘OO공약’은 집권하면 당장 채용하겠다”는 내용도 괜찮다. 대내외 여건도 승자의 포용과 패자의 승복이 없으면 넘기 힘들 정도로 엄중하다.
<조철환 / 한국일보 오피니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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