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30분, 커피숍이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커피를 사기 위해 줄지어 선 자동차의 붉은 등이 보인다. 사거리이긴 해도 조용한 주택가에 유명 커피숍이 생기면서 새롭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상권이 좋지 않다는 예상과는 달리 커피숍은 첫날부터 북적였다. 개업을 알리는 화환이나 풍선 같은 어떤 표시도 없었다. 그런데도 새벽부터 자발적 아침형 인간인지 직장형 아침형 인간인지 모를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든다.
평생을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지금은 아침형 인간을 넘어 새벽형 인간으로 사는 중이다. 나이 들면서 점점 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모범적인 새 나라의 어린이가 되어 간다. 일찍 일어나니 하루가 길고 피곤하여 또 일찍 잠드는 생활로 자리 잡았다.
새벽에는 작은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린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옆집 개 백구가 어슬렁거리며 문을 긁는 소리, 집안 어디선가 삐걱하고 숨 쉬는 소리, 냉장고의 작은 진동까지 느낄 수 있다.
커피 한잔 내려놓고 신문을 가지러 나간다. 돋보기 쓰기가 번거로워 큰 제목만 읽고 넘기다 관심가는 기사는 꼼꼼히 읽은 후 스도쿠를 시작한다. 스도쿠를 열심히 하면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하여 아침 일과에 추가했다. 모두 자고 있을 시간에 홀로 일어나 끝까지 마치고 나면 달리기 경주에서 이긴 듯 뿌듯하다.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나만의 아침이 완성된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도 있어 한때 아침형 인간에 온갖 찬사를 다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부추겼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아침에 하루를 계획하고 활력 있게 살아가라는 주장이다.
아침형 인간이 부지런하고 더 많은 일을 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아침은 일찍 시작되지만, 저녁에는 남들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늦은 시간 영화관에 가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저녁 약속은 일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가끔은 내가 일찍 잠든 사이에도 여전히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또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많을지 상상하면 조금은 억울한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 부지런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부지런한 벌레는 일찍 나온 새의 먹잇감이 되고 게으른 벌레는 살아남는 행운을 누린다는 말인가. 일찍 일어나는 새는 밤이 되어서야 기어 나오는 벌레를 먹어보지도 못할 수 있지 않은가. 어쩌다 느지막이 나가보니 낮보다 훨씬 더 맛있는 먹거리가 있어서 야행성이 된 새도 있을지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곤 했다.
한낱 미물의 세계에도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삶의 여정에서 마주치는 일들이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여전히 옳은지 그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일찍 일어나는 새가 좋은지 늦게 나오는 벌레가 더 나은지 알 수가 없다. 그리하여 산다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과 불안정한 미래와 죽음까지도 포함한 부조리한 세계가 펼쳐진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창밖이 희뿌옇게 밝아온다. 부지런한 새들이 벌써 뒷마당에서 지저귄다. 어느 불행한 벌레는 생을 마감하고 어느 부지런한 새는 배불리 먹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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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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