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용사 밀러씨 한인성당서 장례식 엄수
18살 때 참전, 머리에 부상 입고 평생 홀로 살아
이제야 집으로 갔습니다. 엄마가 있는 편안한 곳으로 갔습니다.
한국전에 참전했다 부상을 입은 상의용사인 에드워드 밀러(74)씨의 장례식이 한인성당에서 치러졌다.
지난 10일 오전 데스 플레인스 소재 성정하상 성당(주임신부 방호일 로마노)에서 거행된 에드워드 밀러씨의 장례미사에서는 법과 대학진학을 앞둔 1951년 18살의 나이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한국전에 참가했다가 미사일 파편으로 머리를 부상당해 상의군인 용사로 56년간을 홀로‘베트란스 홈’에 머물며 병마와 싸우던 그의 한 많은 생이 조명돼 조문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이날 장례식에는 에드워드 밀러씨의 5남2녀의 형제자매 중 맏형을 제외하고 모두 세상을 떠나 맏형 윌리엄 밀러(85)와 형수 서니 밀러, 2명의 조카 레리 카사리노바, 테레사 바빈씨 등 유가족 4명과 성당의 레지오 단원들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맏형 윌리암 밀러씨는“한국전에 2명의 동생들이 참가 에드워드가 어린 나이에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부상소식과 함께 머리를 다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소식에 엄마가 무척 가슴 아파하며 슬퍼하던 모습이 기억난다”며“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동생은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법과대학 진학을 앞둔 상태였다. 늘 밝고 명랑했으며 활동적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국인인 형수 서니 밀러씨는“특히 머리의 부상으로 에드워드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평상시에는 가족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밤이 되면 길거리를 헤매거나 옷 장문을 밤새 열고 닫는 등 이상행동을 보여 결혼도 못하고 평생‘베트란스 홈’에 머물러야만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장례식을 집전한 방호일 로마노 신부는“에드워드씨가 전쟁후유증으로 오랜 세월 이 세상에서 고생 많이 했다. 이제 무거운 짊을 놓고 주님 곁으로 가까이 가는 에드워드를 하나님께서 너그럽고 자비롭게 받아주고 가족을 위로하며 에드워드가 천구으로 갈 수 있도록 다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다.
한편 장례식 후 데스 플레인스 소재 올세이트 묘지에 안장 에드워드 밀러씨는 지난 2000년 6월 25일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한국전 참전 훈장을 받았다. <임명환 기자>
사진1: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에드워드 밀러씨의 생전 모습.
사진2: 에드워드 밀러씨가 한국정부로부터 받은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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