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니 인터뷰 -한국 전국체전 탁구 동메달 고성수
지난 10월 6일부터 6일간 경기도 일원서 열린 전국체전에 참가했던 동남부 선수들이 111명이 참가한 해외 참가 선수팀 중 종합 4위 성적을 올리고 돌아왔다. 예년에 거뒀던 준우승에 비하면 낮은 성과를 올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111명이 참가한 해외 참가 선수팀 중 4위를 생각한다면 결코 실망할 수 없는 결과로 보인다. 특히 선수들이 자체 경비를 마련해 체전에 참가하는 열성을 보인데다 한인커뮤니티에서는 이렇다 할 지원이나 후원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이 올린 성적은 더욱 값지다.
이중 국가대표급 탁구선수 출신으로 92회 전국체전서 동남부선수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고성수(41)가 특히 주목된다. 전국체전 해외 참가 선수단 중 11개 지역팀이 경합을 벌였던 탁구종목에서 동남부팀으로 출전한 고 선수는 상대 뉴질랜드팀과의 경기에서 3:0으로 패해 동메달에 그친 아쉬운 결과를 안고 돌아왔다. 작년 전국대회서 고 선수는 은메달을 차지한 바 있다.
고성수 선수의 탁구 인연은 가족이 1984년 떠났던 파라과이 이민생활에서 쌍둥이 형인 고성진씨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탁구를 먼저 시작했던 형이 교회 탁구시합에서 우승하는 등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탁구를 접하게 된 것. 두 형제는 1년 365일 탁구대를 끼고 살았다. 그만큼 탁구를 사랑했고 탁구에 열정을 쏟았기 때문이다.
5년에 한번씩 파라과이를 방문해 기술을 사사했던 일본 코치로부터 탁구 실력을 늘려가던 고성수 선수는 1987년 도미해 13년간 살았던 뉴욕에서 탁구인생을 이어갔다.
고 선수는 이곳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출신 선수인 이진사 코치로부터 집중적인 훈련을 받았으며 이후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보였다.
미주체전에서 개인단식 2연패를 기록했으며 고성수 선수를 보유한 뉴욕 한인팀은 10년 연속 단체전 우승을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같은 탁구 열정 때문에 주니어 랭킹 2위에까지 올랐으며 미 전국 랭킹 25위를 석권하기도 했다. 이후 탁구 강국인 한국으로 돌아가 활동하기 위해 남들은 도망(?)다니는 군입대까지 자원해 복무를 마쳤다.
한국 선수 당시 대우증권과 동아증권 등 주로 실업팀에서 활동했던 고 선수는 현재 애틀랜타에서200여마일 남쪽지역인 조지아주 알바니시에서 쥬얼리 비즈니스로 제2의 이민기를 맞고 있지만 그의 탁구 열정은 아직도 지칠줄을 모른다. 전국체전과 미주체전 등 각종 탁구대회가 열릴 때 마다 출전하며 못다 이룬 탁구의 꿈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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