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눈치를 살피던 미화이발관이 소문 한 가닥 흘리지 않고 어디론가 떠났다
빙빙 돌던 삼색싸인볼 등에 업은 전봇대가 목 길게 뽑고 안부를 수소문하는 동안
가죽혁띠에 쓱쓱 문지르던 면도날, 손때 묻은 어제는 조금씩 허물어지고
‘이전하여씀니다미화이발관주인백’
낡은 유리창이 안간힘으로 쥐고 있던 마지막 작별 한 장을 내려놓는다
헐렁한 골목 혼자 남은 빈 화분
가위소리 받아먹다 귀 떨어진 시간에서 민들레 한 포기 기별처럼 올라온다
김남수(1954 - ) ‘이전하여씀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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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형편이 어려우면 학교에 못 가고, 입이라도 때우며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이발소였다. 잔심부름을 하면서 가위를 잡고 마침내 미화이발관 주인이 된 그는 이 불경기에 어디로 이전했을까. 맞춤법은 엉망이지만 정성들여 쓴 짧은 작별인사를 보니 야반도주까지 한 것 같지는 않다. 가위소리 받아먹으며 조용히 올라온 빈 화분의 민들레처럼, 그가 어느 골목에 다시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렸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볼 뿐이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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