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는 인류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불린다. 기원 전 2,800에서 2,500년 사이 지금 이라크 지역인 수메르의 우룩이라는 도시를 다스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길가메시 왕의 일생을 토대로 한 이 서사시는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우정,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우트나피시팀, 불로초를 구했으나 잠든 사이 뱀에게 빼앗겨 영생을 잃어버린 에피소드 등이 등장한다.
‘길가메시’는 또 최초의 동성애에 관한 문학 작품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길가메시와 엔키두와의 관계가 단지 같은 남성끼리의 우정을 넘어 동성 간의 성적 애정으로 볼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길가메시가 불로초를 찾아 나선 것도 엔키두의 죽음에 너무나 비통해 하다 같은 운명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고대 중동에서는 동성애는 지탄의 대상이 아니라 성전에서 남창이 공공연히 행해질 정도로 널리 퍼져 있었다. 예루살렘과 함께 서구 정신문명의 본산인 아테네에서는 중년 남성과 청소년 간의 성적 결합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남녀 간의 결혼은 오직 자식을 낳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런 상황에서 동성애를 강력히 금지하는 종교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바로 유대교다. 유대교는 모세의 율법으로 동성애를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범죄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이어받은 기독교나 회교 모두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세 유럽에서는 동성애는 사형에 처해질 정도의 중죄로 여겨졌다. 남성의 경우 초범은 거세하고 재범은 성기를 절제했으며 세 번째 걸리면 화형에 처해졌다. 중세가 끝난 오랜 후까지 동성애자는 엄한 처벌을 받았으며 문명국으로 알려진 네덜란드는 1803년, 영국은 1835년까지 동성애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일부 회교국은 아직도 동성애자를 처형하고 있다.
19세기 문필가로 이름을 날리던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감옥에 갔다 빈털터리가 돼 죽었고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악가 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려 결혼까지 했다 가정은 파탄 나고 정신병으로 고생하며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지난 주말 올랜도에서 발생한 동성애자 나이트클럽 학살 사건의 범인인 오마르 마틴이 동성애자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의 전 아내 시토라 유수피는 오마르가 가끔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으며 동성애자를 증오하는 말을 하면서도 동성애자 같은 행동을 했다고 말했고 그의 대학 동창들은 그가 재학 시절 동성애자 클럽에 가 남자를 고르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엄격한 회교도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가 어려서부터 받은 가정교육과 자신의 내재적 성향 사이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을 수도 있다.
이제 영국의 윌리엄 왕세자가 동성애 잡지 표지 모델로 나올 정도로 서유럽과 미국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한 법적 차별은 사실상 사라졌지만 아직도 이들을 백안시하는 사회적 정서는 남아 있다. 동성애자는 범죄자가 아니라 이성애자와 다른 사람들일뿐이다.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고 차별하고 적대시하는 시대는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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