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박사야 애국자지. 그 양반 잘못이 있나. 아래 사람들이 잘 못해 그렇게 됐지’ -. 4.19로 권좌에서 쫓겨난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당시 보통 사람들이 하던 말이었다.
그러니까 주변에 간신배들이 있어 그렇게 됐지 이승만 대통령 본인은 사심이 없었다는 거다.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비슷한 말이 따라 다닌다. 차지철인가 뭔가 하는 간신 때문에 10.26이란 비극적 사태를 맞게 됐다는 식으로.
간신 때문에 망했다. 5000년 중국의 정치사는 이 한 마디 말로 압축될 수도 있다. 그래서인가. 뒤따라 나오는 한탄은 ‘태평성대는 난세(亂世)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같다’는 것이다.
소인배, 더 나가 간신이 항상 문제인 것이다. 소인배와 간신이 날뛴다. 그런 세상에서 수많은 군자와 충신은희생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신음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충신열사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수 천 년 이어져온 중국문학의 중심 줄거리다.
이 간신의 출현이 그렇다. 어리석은 군주, 혼군(昏君)이란 존재를 전제로 한다. 봉건적 전제 정치 하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암흑은 대부분 왕이 우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모순된 상황이 목격된다. 모든 잘못은 오직 간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간신의권력사유화, 다시 말해 간신현상을 가능케 한 못난 왕에게는 별 비난이 가해지지 않는다.
간신과 혼군은 이란성 쌍생아다.
그런데 통속의 문학이든 정사(正史)든 왕에게는 관대하다. 비난은 간신에게만 주로 퍼부어진다. 이를 어떻게보아야하나.
“중국문화는 비극의식으로 곤경을 파괴하면서도 예(禮)를 파괴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왕이 우매한까닭에 간신이 날뛴다. 이에 맞섬은 군왕에 대한 비판을 뜻한다. 그것은 예에 어긋난다. 그 같은 문화에서 왕이나 황제 등 통치자는 곧잘신격화된다.”현대 중국의 문명비평가 장파의 지적이다. 같은 유교문화권이어서인가. 한국의 정치사에서도 비슷한 정서가 발견된다. 이승만은, 박정희는 항상 나라와 백성만 생각한 애국자였고 주변의 간신들이 망치게 했다는 민초들의 말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이 뒤집어졌다. 최고 통치자가 권력을 사유화 했다. 그리고 몇몇 측근들과 함께 나라를 분탕질 쳤다. 봉건왕조 시대에나 가능했을까한 비선실세의 국기농단으로 국가시스템이 붕괴됐다.
암담하다. 그렇지만 흉(凶) 속에도 길(吉)이 있다고 하던가.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이 형사사건의 피의자로 입건됐다는 사실이 그렇다.
국가적 치욕이다. 국제적 망신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권력도 단죄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 권력에 대한 전 근대적인, 퇴행성 의식구조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다. 존경 정도가 아니다. 일부에서는 아예 신격화 경향마저 보였었다. 그 박정희 신화의 퇴색과 함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