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분·종파·성별·나이 넘어 매일 카페·살롱서 담론 즐겨... 의회민주주의 등 기폭제로
▶ ‘이념 다르면 적’ 한국 현실 자유롭게 말하는 문화 배워야
■ 담론의 탄생 / 이광주 지음ㆍ한길사 펴냄
“파리 같은 도시를 생각해보게. 거기에서는 국가의 위대한 제1급 두뇌가 한곳에 모여 있다네. 그리고 매일 서로 사귀고 경쟁하고 가르치며 발전하지. … 18~19세기 파리를 생각해보게. 100년도 되지 않은 동안에 몰리에르, 볼테르, 디드로 또 그 밖의 많은 사람을 통해 그처럼 풍요로운 정신이 분출했다네.” (p262)
‘교양이 있는 곳에 정치가 없고, 정치가 있는 곳에 교양이 없다’고 한탄했던 대문호 괴테는 프랑스 파리의 자유로운 담론 문화를 부러워했다. 신분이나 종파, 성별과 나이를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유로이 담론과 사유를 즐기는 카페, 하버마스가 ‘시민사회의 독특한 상징’으로 규정한 그곳. 저 유명한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랭보, 아폴리네르·브르통 같은 초현실주의자, 시인 발레리·릴케·오스카 와일드, 화가 피카소·브라크 등 당대의 명사들이 제 집처럼 드나들던 ‘카페 되 마고’가 있는 파리였다.
‘동과 서의 차 이야기’(2002년) ‘유럽 카페 산책’(2005년) 등 책과 차, 카페 문화에 대한 책을 선보여 온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가 이번에는 유럽의 살롱과 클럽·카페에 관한 책을 내놓았다. 그는 근대적 언론의 자유와 의회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고, 선진 유럽사회와 문화발전의 기폭제가 된 것이 담론 문화라고 말한다. 시작은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에 따른 책의 대중적 보급이지만 살롱과 클럽, 카페에서의 자유로운 담론문화의 공이 컸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고대그리스로 거슬러가 당시의 ‘자유시민’이란 바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들의 최고 덕목은 세련되고 아름다운 언동이었다고 지적한다. 철학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수사학(레토릭)이 중요했고 그들에게 이방인이란 미개인처럼 버릇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담론 문화가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17~18세기 살롱·클럽·카페 문화로 발전하며 공공성, 즉 공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후작부인 이사벨라와 랑부예가 궁정사교의 장소로 열었던 살롱, 영국 엘리트 남성들인 소위 젠틀맨의 모임인 클럽(커피하우스), 귀족 대신 유대인 여성이 중심이 된 독일 살롱 등을 훑어가는 저자는, 한국의 클럽 격인 전통주택의 ‘사랑(舍廊)’이 유학과 남성중심의 문화 속에 여성이 배제됐다는 점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또 전문용어나 추상적인 사상, 관념적인 표현 등 현학적인 것을 혐오하는 전통이 낳은 부작용도 지적한다. 재치와 부드러움, 가벼운 필체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사상적 고뇌와 치열한 상상력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괴테만큼이나 유럽의 담론문화를 부러워하는 저자는 우리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국가의 품격을 지킨다는 것은 사회가 개인의 경우와 다름없이 서로 이웃에게 귀 기울이며 반듯한 말씨와 예절을 두루 갖추는 것을 일컫는다. … 시대착오적 국가주의자들이 자신과 생각이나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압박하고, 이데올로기적 슬로건이 그림자를 드리운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반듯한 담론문화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과연 누가 이런 비난에서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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