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데뷔기]
사람에게는 일생에 몇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내게 온 기회는 바로 98년 드라마 ‘해바라기’였다. 그 드라마를 통해 나를 던졌고, 그래서 결국 나를 얻었다.
공채 탤런트 25기로 97년 MBC에 첫발을 디뎠던 나는 정말 ‘준비되지 않은’ 연기자였다. 연기를 해본 적도 없고,단순히 ‘연기를 하고 싶다’라는 열정 하나로 시험을 쳤던 것이 운 좋게도 붙었다. 이런 나의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를 처음으로 경험한 것은 동기들과 함께 MBC 공채탤런트 연수를 갔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나는 정말 ‘끼’가 없는 아이였다. 부끄러움도 많았고,연기를 어떻게 하는 지도 몰랐다. 한번은 연수 중간에 ‘극 연습’이 있었다. 교수님이 “자 우리 모두 지금부터 새가 되어 보아요!”라고 말하면 모두들 새처럼 행동 해야 하는 수업이었다. 이런 중에도 나는 ‘아니, 대체 이렇게 민망스런 행동을 어떻게 하라는 거지?’라며 소심해 했다. 반면 내 동기들은 이런 나를 뒤로한 채 이미 한 마리 새(?)로의 변신을 마치고 있었다.
이런 나를 깨뜨린 것이 98년 MBC 메디컬 드라마 ‘해바라기’의 정신병자 문순영 역이었다. ‘벽’이라고 말한다면 맞을까. 나는 연기를 하면서도 나름대로 넘을 수 없는 벽에 갇혀 있었다. 여배우는 청순하고 예쁘고,뭔가 아름다운 역할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될 거라고 굳게 믿으며 살았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역할은 빡빡머리 정신병 여환자였다. 자연히 푸르스름한 머리로 화면에 비치고 나니,예쁘게 보이기 보다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매일 대본을 보면서 애드리브를 연구했고,말투를 생각해 냈다. 옆에 있는 여자 연기자들이 TV속 자기 모습이 어떻게 나오는 지를 생각하며 안달할 때,나는 어떻게하면 더 ‘정신병자’ 처럼 보일 지를 연구했다.
더 없이 큰 변화였다. 그렇게 남의 눈을 의식하던 내가 이제는 화면에 비치는 내 모습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김정은표 코미디’는 그 당시 혼자 연습하던 애드리브가 큰 바탕이 됐다.
이렇게 되고 나니 그 동안 몰랐던 ‘기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번 그런 연기를 해 본 뒤로는 망가지는 역할도,예쁘지 않은 역할도 두렵지가 않았다. 그래서 더 자신있게 덤비고 카메라를 무서워하지 않고 연기할 수 있게 됐다.
모든 사람에게는 기회가 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그 기회를 잡을 수는 없다. 준비된 자, 기회를 담을 만한 용기을 가진 자만이 그 기회를 알아본다. 내가 나를 버리고서야 진실한 나를 찾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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