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순 한인회장은 브린마길 한인축제를 한인회가 맡아서 하면 어떠냐는 주위의 질문과 권유를 자주 듣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설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카고 한인축제 하면 시카고한인상공회의소(이하 상의)가 떠오른다. 20년을 넘게 상의가 맡아서 진행해 온 행사다. 그 연륜과 전통이 쌓인 축제를 상의가 아닌 한인회가 나서서 해야한다고 제안하는 배경에는 한인축제에 대한 기대와 상의에 대한 불안이 함께 깔려있다.
아예 서버브로 한인축제를 옮겨 오는 것도 대안으로 나온다. 지금은 없어진 일리노이북부 한인상공회의소(NIKABA)가 한 차례 치른 바 있다. 어떤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비록 주변 한인상권이 축소되었다 해도 브린마에서 열리는 축제는 주변 타인종들도 많이 찾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밀워키 길을 중심으로 한 서버브 지역의 한인상권이 팽창하고는 있으나 새 축제를 여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이다.
막 출범한 이순자 회장 체제의 상의는 8월에 치르는 한인축제 준비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미 지역 시의원을 찾아 협조 약속을 끌어냈다. 회장과 사무실 열쇠가 바뀌는 난리 속에서도 해마다 축제를 치러낸 경력이 자랑이다. 축제 내용과 결산은 조금 따져봐야 하지만 말이다.
브린마 길 한인축제는 ‘코리안 컬처’를 내세운 행사다. 따라서 한인사회의 체면과 위상이 걸려 있다. 오랜 기간 잡음이 많았던 상의가 조직을 재정비했다 해도 외부에서 볼 때 준비부터 결산까지 내부에서 녹여내기에는 벅차 보인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브린마 축제든 서비브에서 축제를 하든 코리안축제가 안정된 틀을 잡으려면 축제를 위한 상설기구가 필요하다.
축제 상설기구, 그 발상의 단서를 말해야겠다. 코리안을 내세운 축제가 특정 단체와 회장의 결정에 맡겨질 때 규모나 내용의 연속성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한인회나 상의가 역할을 한다해도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회장은 물론 실무진까지 함께 바뀌는 속성상 경험을 축적하고 조직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길 기대할 수가 없다.
브린마 이전에도 축제는 있었다. 한인회가 주최해 다운타운 퍼레이드를 한 적도 있고 로렌스길 꽃차 행렬 뒤에 플라스키 길 감퍼스팍에서 논 적도 있었다. 그 명맥이 이어지지 않은 데에는 2년마다 바뀌는 한인회장의 배포나 기질, 한인 주거지역과 상권의 이동 등 여러 이유가 있다. 그나마 브린마길의 한인축제가 명맥을 이었으니 이는 상의의 공(功)이다.
대외적인 이유도 있다. 당장 지금을 보자. 5월은 계절 자체가 축제다. 아시안문화유산의 달이어서 다운타운 행사가 많이 잡혀있다. 스코키 문화축제는 해마다 한인들이 참여한다. 사실 5월 뿐 아니다. 인종의 다양성 만큼 다양한 축제가 연중 무휴로 펼쳐지는 시카고에서 한인사회의 참여를 바라는 축제는 줄을 잇는다. 그런데 그 공적인 창구는 물론 대외적인 요구를 수집해 체계적으로 접목시킬 전문기구가 없다. 금실문화회 이진 회장이 거의 유일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LA에는 한인축제재단이라는 게 있다. 1999년 비영리재단으로 발족했다. ‘코리아타운 번영회’란 이름으로 1974년 첫 한인축제를 연 이후 축제 규모와 참여가 확대되면서 필요에 따라 생긴 기구다. 16년째 해마다 열리는 한인축제를 전담해 오고 있다.
시카고에 한인 축제전담 기구가 생긴다면 LA와는 달리 한인축제 개최 뿐 아니라 코리안-아메리칸 문화 표출의 대외 창구역할까지 해야한다. 한인회를 중심으로 발족될 수도 있고 한인회와 상의, 또는 이곳 한인사회의 중지를 모아 결성될 수도 있다. 기관단체 협의회에서 공론화하거나 문화이벤트 전문가의 컨설팅을 거칠 수도 있겠다.
방법과 방향은 많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전담기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살려 축제를 업그레이드할 때 코리안 컬처가 주류사회에서 고급 상품이 되고 축제는 한인사회 발전의 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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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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