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에 도착했다. 이념의 경계에서 침묵하는 평화의 땅이다. 시부모님은 황해도에서 한국전쟁 중 1월 4일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남하하셨다. 한 살배기 남편은 엄마 등에 업혀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넜다고 했다. 곧 돌아가리라 했던 부모님의 고향을 멀리서 바라볼 기회를 얻은 남편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실향의 아픔을 지켜보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미국에서 자란 손주들에게 할아버지의 고향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곳은 군사분계선 남쪽에 있는 민간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끝 지점이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고, 곳곳에 세워진 벙커와 무장한 군인들을 보며 긴장했다. DMZ는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평화의 종을 품은 종각을 바라보며 낮은 언덕을 오르니 통일전망대가 투명한 자태를 드러냈다. 분단의 상징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공간이다.
사면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서니 탁 트인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기가 북한 땅이 아닌가! 그리도 가고 싶어 했던 시부모님들이 태어나 자라난 고향, 조국의 땅을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던 곳이라니. 유엔군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졌다. 산천은 예나 다를 게 없는데 분단으로 겪은 상처를 기억한다. 흐려진 눈동자를 애써 감추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은 채 자리를 뜨지 못했다.
휴전선 철조망 경계로 태극기와 북한 깃발이 펄럭였다. 멀리 개성이 보인다. 개성은 옛 고려 왕조 400여 년간 수도로서 3.8선 이남에 있었지만, 6.25 전쟁 이후 북한에 빼앗겨 북한 땅이 된 비운의 도시다. 개성 공단 안 폭파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의 검은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전기를 공급하던 송전탑이 남과 북의 색깔을 달리하며 서 있었다. 개성 공단으로 통하던 길이 막혔다. 차단된 모습을 보며 가슴 한편이 싸늘해지는 걸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여전히 시내를 에워싼 송악산은 멋진 자태를 자아내고 있는데….
다음 코스로 제3 땅굴에 다다랐다. 모든 소지품을 맡기고 헬멧을 쓴 채 급경사진 지하로 들어갔다. 물기 젖은 굴속으로 발을 조심스레 디뎠다. 흙이 아닌 돌멩이로 에워싸인 터널 안을 걸으며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키가 작은 나에겐 서서 걷기에 충분한 높이였고, 옆으로 서너 명이 함께 할 수 있는 넓이였다. 지하 70m 아래에 1,635m 길이로 뻗었고, 그중 일부만 관람할 수 있었다. 이곳을 통해 1시간에 3만 명의 병력이 이동할 수 있단다. 경악스러움과 함께 힘들게 작업했을 북한 주민 모습이 겹쳐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 당시 땅굴의 발견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북한은 남침용 군사 작전의 하나로 휴전선 지하에 땅굴을 뚫어 기습적인 병력 및 장비 이동을 도모했다. 땀을 흘리며 헐떡거리고 걷는 많은 외국인에게 엄지를 번쩍 들어 보였다. 세계에서 민족 분단의 아픔을 가진 유일한 곳이지 않은가.
숨을 고르며 휴게소에 앉았다. 머리 위로 날아오는 새들이 있었다. 제비다. 처마 밑 둥지 속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주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들은 고향 바람이 불어오면 떠나온 둥지를 기억할 것이다. 그들 만이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북녘 땅! 하늘 위 북쪽 창을 열어 놓은 듯 새들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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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숙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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