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 사는 물개는 다른 지역에 사는 물개보다 평균 수명이 짧다고 한다. 숨쉬기 창구인 얼음 구멍이 완전히 얼어서 막히지 않도록 이빨로 수시로 갉다 이빨이 상하기 때문이다. 물개와 먹이 사슬을 맺고 사는 에스키모 원주민들도 치아가 신통치 않다. 물개 가죽을 계속 다듬다보면 성한 치아가 남아나지 않는다.
고대 중동의 사막지대 주민들은 곡물을 미세하게 가는 기구가 없어 거친 곡식을 마구 씹어댄 데다 지형적인 이유로 모래가 섞인 음식을 자주 먹어서인지 유골의 치아에서 현저한 마모현상이 드러났다. 그래도 생존을 위해 치아를 고생시킨 것이니 좀 낫다.
아마존 유역의 원주민들은 식인물고기의 날카로운 이빨을 본 따서인지 끌로 어린이의 앞니를 뾰족하게 간다. 신경을 건드리지 않을 리 없다. 어떤 부족은 살아가면서 지을 수 있는 6가지 중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사춘기가 지난 여자의 앞니 6개를 간다. 오복의 하나인 튼튼한 치아가 근거 없는 관습과 물신숭배의 제물로 수난을 당했던 것이다. 그래도 당시엔 자신들만의 문화를 이어간다는 자부심은 있었을 것이다.
로마 전성시대에 한 귀족집안의 딸이 예수를 믿다가 체포됐다. 일부 과격한 무리가 예수를 부인하지 않는 그녀의 생니를 무자비하게 부러뜨렸다. 고집을 부리면 불에 태워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이 여인은 마지막 기도를 올린 뒤 제 발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죽어가면서도, 치아가 아파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고문으로 치아가 부러질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랬을까. 치아가 억울하게 망가졌으나 치과의사의 ‘수호천사’로 칭송 받고 있으니 원혼은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는 10여 년 간 이유 모를 감금생활을 한 주인공(최민식)이 주모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하수인의 이빨을 펜치로 뽑아 울분을 토해내는 장면이 나온다. 잔인하기 그지없지만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한 관객들이 보기엔 그럴 만도 한 대목이다.
생존을 위해, 사회관습을 보존하기 위해, 소신을 지키기 위해 겪는 치아 수난은 이유 있는 치통이다. 반면에 이가 아프지 않아도 심한 치통을 느낄 수 있다. 한인 치과의 3명이 메디칼 사기단에 연루돼 검거됐다는 소식이 메디칼로 치아를 고친 환자들에게 ‘심리적 치통’을 준다. 치아 치료를 받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내 이빨을 이용해 허위, 과대 진료로 메디칼에 거액을 청구하다니” 하며 분개했다. 열을 올리면 치아가 다시 욱신거리는 느낌이란다.
치통을 없애주기는커녕 되레 치통을 안겨주는 치과의사들의 파렴치함에 치아수난의 형벌을 내리면 어떨까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든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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